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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필드의 전방에서 수많은 사업들을 진행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져온 질문이다. 이 사소하고도 육중한 화두는 밤에 불을 끄기 직전의 적막까지 끈질기게 함께해 왔다.
결국 내가 내린 최후의 결론은 명확하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창조와 디자인은, 결국 단 하나의 단어 ‘형상(形象)’을 빚어내는 일이라는 것.
얼핏 들으면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사물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형상’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두 개의 한자를 천천히 해부해 보면, 그 안에는 중요한 비밀이 잠들어 있다. 하나의 온전한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창조자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의 시각을 동시에 가져야만 한다.
눈 뜨고 보는 세계와 눈 감고 만나는 세계, 형(形)과 상(象)
먼저 ‘형’은 우리가 눈을 뜨고 바라볼 때 마주하는 세계다. 망막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 비례와 채도, 제품이 차지하는 부피감과 손끝에서 느껴지는 마감의 촉감처럼 인지되는 모든 물질적 외형이다. 즉, 객관적인 데이터이자 계량이 가능한 영역이다.
반면 ‘상’은 우리가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심안(心眼)의 세계다. 대상을 마주하고 돌아선 뒤, 당신의 마음속 호수에서 아른거리며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잔상(殘像)이다. 잊혀지지 않고 떠올라 이성적인 논리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가슴 한구석을 자극하는 숭고함, 열망, 혹은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의 중력이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과 같은 주관적인 서사이자 스스로 진화하는 꿈과 신화의 영토다.
필자 제공
'형'과 '상'의 다이나믹한 역학 관계는 우리의 일상적인 욕망 속에서 늘 강하게 폭발하고 만다.
어느 오후, 쇼윈도 앞에서 유독 매혹적인 물건 하나와 우연히 마주했다고 상상해 보라. 형태의 관능미와 아름다움을 인식한 감각의 충격. 그것이 바로 ‘형’의 선전포고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그 찰나의 세계 안에서 인간은 운명의 순간을 만나게 된 듯 감동하며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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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은 다시 냉정하게 이성을 붙잡고 지갑을 굳게 닫은 채, 그 공간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당신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고 사물과의 물리적 거리도 완벽하게 멀어졌다. 내 이성의 계산기는 "지출을 막았으니 역시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바로 그날 밤, 사물이 사라진 완벽한 암흑 속에서 오히려 이 이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낮에 마주했던 그 사물에 대한 기억이 마음속에서 등불처럼 타오르며 더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침대 위에서 수없이 검색하며 뒤척이게 만드는 지독한 상상과 열망의 시간.
이 순간 분명 당신의 눈앞에는 그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눈을 감고 보는 세계를 지나는 중이다. 결국 당신이 밤을 지새우게 만든 동력원은 물리적 실체인 ‘형’이 아닌, 형체가 사라진 뒤에도 내면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영혼의 잔상, 바로 ‘상’의 중력인 것이다.
인간은 이성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 진정한 디자인은 결국 ‘형’이라는 물질적 도약대를 통해, 끝내 눈을 감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의 ‘상’을 구축해 내는 것.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 디자인은 비로소 강인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필자 제공
명품의 가치는 눈을 감았을 때 더 잘 보이는 것
이 '형'과 '상'의 이중주는 비즈니스의 영토, 특히 인류가 갈망하는 명품의 세계로 내려오는 순간 무서운 지배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영혼을 빼앗긴 채 동경하는 대부분의 명품들은 사물의 표면적인 하드웨어인 '형'에 의해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에 의해서 모든 것이 철저하게 결정된다.
영화의 한 장면 속 아름다운 배경 위로 연인이 함께 끝없는 도로를 누비던 자동차가 어느새 내 오랜 드림카가 되어버리고, 잡지에서 본 시계를 잠들기 전 검색하게 되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많은 이야기를 품은 브랜드의 원단이 단 한 벌의 재킷으로 탄생할 때, 그리고 트렌드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변치 않는 상징성을 간직하게 된 물건을 마주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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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관.에서 사실 그것들은 정교하게 제작된 원단 조각들의 뭉치이고, 잘 재단된 가죽 주머니이며, 차가운 금속과 프레임의 덩어리라는 사물의 엄연한 ‘물리 현실의 한계'에 머무를 뿐이다. 물론 그 현실의 정교함은 육안을 즐겁게 만들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인간을 밤잠 설치게 만드는 숭고한 중력을 발생시킬 수 있을까?
인간이 기어이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그것들을 내 품에 안게 되는 진짜 이유는, 그 사물이 내뿜는 독보적인 이미지와 나 자신을 함께 레이어 시켜내려는 ‘판타지(Fantasy)’가 강렬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이 제품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상'의 경우는 현실을 넘어선 제품의 고유한 이미지와 역사, 그리고 창조자의 철학과 역사까지도 모두 잔향(殘香)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물이 내 몸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고, 살에 닿고 손가락을 통과하는 순간, 사물의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이미지와 역사, 그리고 창조자의 브랜드 철학이 내 정체성 위로 포개어진다. 이로써 사람들은 물건을 소비하는 듯하지만, 실은 사물 이면에 잠재된 무형의 '상'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만의 존재론적 부적을 획득하는 이 된다.
출처. unsplash
판타지와 현실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것
인간은 언제나 진정한 행복을 느끼길 갈망한다.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우리의 영혼이 가장 생생하고 뜨겁게 깨어나 행복을 느끼게 되는 자리는 완벽한 현실도, 터무니없는 허구도 아니다. 바로 ‘판타지(상)와 현실(형)의 중간,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단한 제품의 현실(형)이 내 눈앞에 존재하고, 그 사물이 품고 있는 시간의 축적과 철학의 이미지(상)가 내 뇌리를 장악하여 두 세계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는 바로 그 틈새. 이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우리는 늘 행복해지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소개팅도, 여행도, 새 물건도 대개 도착하기 직전이 가장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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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언제나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이미 가장 완벽한 순간을 한 번 만나고 있는 중이니까.
그리하여 우리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밤마다 불을 끄고 누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내일은, 상상이 현실로 조금 더 가까이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그 열망의 에너지는 인간의 삶을 얕은 곳에 머물지 않게 만드는 엔진이다. 그것은 단지 값비싼 물건을 향한 소유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물질적 단서를 디딤돌 삼아,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와 서사를 물질적 감각으로 완성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결국 고부가가치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독。적인 지위를 누리는 본질은 차가운 가격표의 높이가 아니다. 바로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세계 경계의 정교한 설계 속에 있는 것이다.
출처. unsplash
人SIGHT 강령, 보이는 것 너머의 신화를 직조하라
디자인은 사물에 기능과 유행을 입히는 화장술이 아니다. 사물을 통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질문을 던지는 신화론(Mythology)이다. 겉모습의 화려함은 기술의 숙련과 자본의 투여로 얼마든지 복제와 모방이 가능한 영역이다.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서 유행이라는 단어와 함께 낡아지고 소모될 운명인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뼈대 이면에 숨겨둔 창조자의 단단한 질문과 철학(상)은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무거운 중력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변치 않는 구심력으로 더 크게 끌어당기게 된다.
결국 눈을 뜨고 보아도 아름답지만,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잠 못 들게 만드는 지독한 영혼의 잔상을 내 이야기로 설계하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오히려 존재감이 폭발하는 그 중력을 이해하는 자만이, 시장의 가격표를 넘어 자신만의 고유한 환율을 세우는 진짜 ‘보는 자(The Person Who Sees)’가 된다. 현대 예술의 문법을 진두지휘했던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창조자의 태도를 두고 이런 상징적인 말을 남겼다.
“한 발은 단단한 땅에 딛고, 다른 한 발은 공중에 둔 채,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라.”
당신의 시각이 곧 당신의 미래가 될 것이며, 그 입체적인 여정 끝에서 당신은 구조가 만든 전설에 갇히지 않은, 스스로가 창조한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제이슨 김 브랜드 디렉터
께 레이어 시켜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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