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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역사' 인텔의 도전<16>
메모리 반도체와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 덕분에 전 세계 1위 반도체 업체로 군림한 인텔은 이동통신(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며 예전 같은 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인텔이 모바일 시대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잘못된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전략 부재가 실기의 원인이다.
인텔의 전략적 오판은 모바일 뿐 아니라 요즘 대세가 된 인공지능(AI) 대응까지 늦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 바람에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암(ARM), 퀄컴, 브로드컴 같은 모바일 반도체 업체들과 TSMC 등 반도체 주문생산(파운드리) 업체들에 뒤처져 좀처럼 잃어버린 왕좌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방한해 한국공학한림원에서 강연을 한 크레이그 배럿 전 인텔 최고경영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도체 분야의 맥도널드
인텔은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년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1위 자리를 한 번도 빼앗기지 않았다. 이때가 인텔의 전성기다. 이 시기 인텔을 이끈 최고경영자(CEO)는 앤디 그로브, 크레이그 배럿, 폴 오텔리니, 인텔 내부에서 BK로 통하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앤디 그로브와 크레이그 배럿이 이끌었던 인텔과 그 이후 인텔을 다르게 평가한다. 인텔 임원을 지낸 모 IT 업체 대표는 "그로브는 CPU 위주로 사업을 재편해 인텔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고 크레이그 바렛은 철저한 생산관리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지켰다"며 "두 사람이 물러난 뒤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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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런 평가는 인텔 내부 의견과 다를 수 있다.
1987년 인텔의 CEO가 된 그로브는 1993년 전립선암 발병 사실을 알았으나 이를 숨긴 채 일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인텔 인사이드'로 대표되는 CPU를 내세워 PC 시장을 주도했고 펜티엄 버그 등 온갖 악재를 이겨냈다. 하지만 병세가 악화돼 1997년 크레이그 배럿에게 CEO 자리를 넘기고 회장으로 물러났다. 2000년 파킨슨병까지 겹치는 바람에 2005년 완전히 은퇴해 병마와 싸우다가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그로브의 뒤를 이어 인텔을 이끈 크레이그 배럿은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수였다. 재료공학 분야의 전문가였던 그가 인텔 CEO가 된 뒤 가장 집중한 문제는 반도체 수율 향상이었다. 수율이란 전체 생산품 가운데 판매를 할 수 있는 완성품 비율을 말한다. 수율이 높으면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이 많다는 뜻이고 반대로 수율이 낮으면 그만큼 불량품이 많다는 의미다.
당시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일본 반도체에 비해 수율이 낮았다. 배럿은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를 가져와 인텔 제품과 비교하며 수율을 끌어올릴 해법을 찾았다. 그 결과 그가 내놓은 것이 이른바 '맥도널드 공법'이다.
배럿이 미국의 햄버거 업체 맥도널드에서 영감을 받아 도입한 이 방법은 인텔의 여러 공장 가운데 수율이 높은 공장의 생산 방식을 다른 공장들이 똑같이 따라하도록 만들어 수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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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제조 공정의 표준화를 통한 품질 유지다.
"반도체 분야의 맥도널드가 되자"며 제조 공정의 표준화를 꾀한 배럿 덕분에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의 수율을 80%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덕분에 배럿은 일본 메모리 반도체업체들과 수율 격차를 크게 줄이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구세주가 됐다.
플래시마저 삼성에 쫓긴 인텔
2005년 크레이그 배럿의 뒤를 이어 CEO가 된 폴 오텔리니는 공학도였던 전임자들과 달리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친 전문 경영인이었다. 때문에 CEO가 될 때 진통을 겪었다. 인텔에서 마케팅 부문을 총괄했던 그가 CEO에 오를 때 가장 반대한 사람이 전임 CEO인 배럿이다. 기술을 모르면 반도체 회사를 이끌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오텔리니가 CEO 자리에 오른 것은 인텔의 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텔은 직원들을 대량 해고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는데,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가 원인이었다. 일본 도시바가 처음 만든 플래시 메모리는 D램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전원이 꺼져도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스마트폰, 디지털 카메라, USB 저장장치 등에 널리 쓰인다. 인텔은 도시바가 만든 플래시 메모리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1988년 가장 먼저 상용화 했으나 기술 및 마케팅 경쟁에서 후발 주자들에게 밀려 시장 주도권을 잃었다.
특히 2006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0기가비트 용량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발표해 인텔을 충격에 빠트리며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올랐다. 당시 삼성전자는 한계에 부딪친 저장 용량의 확대를 위해 새로운 제조공법을 개발해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었는데 이 기술이 지금의 반도체 회로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적층식 기술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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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인텔과 달리 다양한 전자제품까지 만드는 삼성전자는 새로 개발한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여러 전자제품에 적용해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냈다.
인텔은 후발 주자들이 치고 올라오며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경영 위기로 봤다. 따라서 시장 확대를 위해 전문 경영인인 오텔리니를 택한 것이다. 오텔리니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펜티엄 CPU 가격을 대폭 내려 경쟁업체인 AMD를 따돌리며 CPU 분야에서 확실한 1위 자리를 굳혔다. 여기에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에도 인텔 CPU를 사용하도록 만들어 매출을 대폭 끌어 올렸다. 덕분에 그의 재임 기간 인텔은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최초로 5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영업이익률이 30%에 이르렀다.
그런 공적에도 불구하고 오텔리니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꼬리표가 붙었다. 바로 굴러 들어온 모바일 사업을 걷어찼다는 비판이다.
스스로 굴러온 복을 차다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어 주세요."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 주인공은 고인이 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였다. 당시 잡스는 컴퓨터와 휴대폰을 결합한 새로운 제품을 구상 중이었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혁신적 제품 '아이폰'이다. 컴퓨터의 CPU처럼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할 응용 프로세서(AP) 개발을 세상에서 CPU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인 인텔에 의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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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 스스로 시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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